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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I Love You, I Love You Not
2017. 3.31- 6.24  (*opening: Mar 30, 2017 6pm)

Hyeree Ro’s  performance: April 1, 29. May 20, 27. June 24. 3pm

 

최종엽서-1

Artists

강희정 Hee Jung Kang

김세은 Seeun Kim

노혜리 Hyeree Ro

박천욱 Cheonwook Park

서정빈 Jeongbin Seo

이준용 Joonyong Yi

장종완 Jongwan Jang

전명은 Eun CHUN

한우리 Uri Han

황효덕 Hyo Duck 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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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트컬렉션은 2017년 첫 전시로 주목할 만한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개최한다. 2014년에 시작하여 올해로 네 번째 연례전이 된 이 전시에는 강희정, 김세은, 노혜리, 박천욱, 서정빈, 이준용, 장종완, 전명은, 한우리, 황효덕(이상 10인)이 참여하여, 설치, 회화, 퍼포먼스, 조각, 드로잉, 사진, 영상,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의 작업들을 선보인다. 참여작가들은 중견 작가 권경환(이준용, 황효덕을 추천), 권오상(박천욱, 서정빈을 추천), 우순옥(강희정, 한우리를 추천), 이주요(김세은, 노혜리를 추천), 정희승(장종완, 전명은을 추천)이 추천하였으며, 하이트컬렉션은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중견 작가들에게 추천을 요청함으로써 추천을 받은 젊은 작가들 또한 다양한 매체의 작업을 선보일 수 있기를 희망했다. 결과적으로 추천인들이 다루는 매체와 피추천인들이 다루는 매체 간에는 상통하는 바가 없지 않으며, 이들이 각자 또는 상호간에 교감하며 지니고 있는 매체에 대한 견해(또는 그 차이)는 출품작뿐만 아니라 도록에 수록되는 인터뷰와 에세이에서도 감지된다. 여기에는 각자 미술을 업으로 삼게 된 배경이나 시간의 차이가 있는 만큼 미술에 대한 입장과 생각의 차이도 포함되어 있다.

어나더데이 인 파라다이스

이 전시는 처음 ‘어나더데이’라는 가제로 시작되었다. 필 콜린스의 노래 ‘어나더데이 인 파라다이스’에서 따온 것인데, 미래에 대해 별다른 희망 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날(새로운 날), 반복적인 하루(똑같은 날), 자신과 타인에게 주어지는 삶의 여러 가지 기회(또는 외면) 등을 상정해 볼 키워드로써, 기획자가 전시에 대해 어렴풋하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기 위한 장치로 필요한 것이었다. 이 전시의 형식이 기획자가 직접 참여작가를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자는 추천인을 선정하고, 참여작가는 추천인의 추천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물론 전시 참여 의사 확인 후) 참여작가들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표류 상태에 있게 되는데 이때 가제는 기획자에게 꼭 필요한 부표이기도 하다.

젊은 작가 그룹전이 해를 거듭할수록 전시의 형식이나 주제적인 측면, 그리고 그 외 여러 요소들에 대해서 피드백을 받게 된다. 그 중 무엇보다도 견해가 엇갈리는 것이 추천제 방식이다. 기획자의 카리스마나 권한을 중요하게 보는 이들은 추천제에 대해 부정적인 편이며, 전시의 기획의도나 기획력에 대한 요구사항이 더 높다. 추천제를 미술계 내 인맥과 카르텔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전자에서 원하는 강한 기획력은 하이트컬렉션의 다른 기획전을 통해서 채워나가도록 하고, 젊은 작가 그룹전에서는 작가들의 색채에 보다 더 치중하고자 한다. 후자에 대해서는 이 전시가 젊은 작가들의 전시이지만 추천인-피추천인들의 관계에서 감지되는 작업의 상관 관계나 미술에 대한 관점의 차이도 드러내고 싶어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는 도록에 수록 되는 글과 인터뷰에서 상당 부분 확인 가능하다. 단, 전시에서는 추천인이 아니라 젊은 작가들이 주목 받는 것이 중요하므로 젊은 작가들이 펼쳐 보이려 하는 것들에 최대한 집중하였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한다,…

열 명의 작가들이 참여를 확정 지은 후 차례차례 미팅이 있었다. 기획자와 작가들의 삼분의 이는 처음 알게 된 사이들인 만큼 첫 미팅은 조심스럽고 두서가 없기도 했다. ‘젊은’의 명확한 기준을 두지 않은 만큼 올해도 참여작가들의 연령과 경력은 편차가 있는 편인데, 전시준비 과정에서는 노련함의 차이였을 뿐 각자 자신들이 가진 에너지의 궤도 내에서 고군분투하는 것은 비슷했다. 상이한 에너지를 가진 작가들을 대하면서 기획자 역시 번민이 많았고 스스로의 부족함에 대한 자책도 많았다. 따라서 이 전시는 이들 모두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현재까지의 대화로 일군 풍경이다. 전시에 대한 입장은 참여자 모두 제각각일 것이지만, 기획자는 젊은 작가들에게 이 전시가 정답지를 내는 전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피력했고, 작가들이 해보고 싶었던 여러 가지 시도 중 하나를 풀어보는 ‘경험 1’로서 생각해주기를 희망했다.

전시제목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준용의 드로잉 <아날로그 고백기계>(2014)에서 착안했다. 지난 겨울, 작가들과의 첫 미팅을 모두 마친 기획자에게는 이 드로잉이 짝사랑 하는 상대의 마음에 대한 궁금함이라기 보다는 스스로의 마음을 정하지 못해 꽃잎의 홀짝에 기대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드로잉에 반복해서 적힌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말 위에 작가 미팅의 어색한 순간들이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20대 후반~30대 중 후반 작가들이 이대로 미술을 지속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갈등한다. 이들이 어느 날 갑작스레 받은 전시 제안은 미술을 그만 두려던 마음을 번복하고 한 번 더 해보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미술을 업으로 한다는 것은 이 번복을 끊임 없이 반복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참여작가들과 이들의 주요 출품작을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강희정은 독일 유학 시절에 시작한 <욕조> 작업과 책 작업(색의 책, 선의 책, 면의 책, 제주도의 책) 및 책상자 작업을 전시한다. <욕조>(2011-2017)는 2015년 늦가을 작가가 서울 상봉동의 전시공간 반지하에서 하나의 작업을 가지고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들을 연결하려는 시도로써 《욕조 프리퀄》이라는 전시로 선보인 바 있다. 당시 강희정은 완성작이 아닌 책상을 욕조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진행했는데, 그는 “처음 만들어진 작업을 다시 제작하는 과정은 조각조각으로 분해되어 먼지투성이 에어 캡에 꽁꽁 싸매어진 작업들을 대면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독일에서 제주도를 거쳐 서울에 놓여진 작업과 서울, 제주도, 그리고 다시 서울로 옮겨진 20년 된 책상을 다시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과정이 《욕조 프리퀄》이었다면, 올 2월말부터 작가는 <욕조>의 각 구성부를 하이트컬렉션 전시장으로 옮겨와 언젠가 꿈에서 본 이미지처럼 물이 채워질 수 있는 욕조로 합체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독일, 제주도, 상봉동 등 여러 곳을 거쳐 하이트컬렉션 전시장으로 온 욕조가 또 다시 합체되는 과정은 지난 했다. 욕조에 물을 담기 위해 방수작업에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꿈에서 본대로 욕조에 물을 담고자 애쓴 작가의 노력은 의미심장하다. 그의 <욕조>는 책상을 뒤집은 전복이라는 행위의 결과이고 겉면에는 ‘아니(ne)’라는 부정의 언어가 크게 써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기억 저편의 어떤 순간처럼 기분이 좋을 만큼 따뜻한 온기로 채우기를 바란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전시되는 책 작업은 미술의 색, 선, 면을 주제로 하여 각각의 책 안에 실린 글과 이미지를 보고 작가가 연상한 색으로 책을 덮거나, 선과 면의 형태로 책 위에 드로잉 한 작업들이다. 또한 제본된 책 외에도 하드보드 상자와 석고, 돌 등 조각적 재료를 이용한 작업은 공간 속에 놓일 때 조각의 가능성을 갖는다.

김세은은 최근 유학 중에 제작한 회화들을 선보인다. 이 작품들은 제목에서부터 틈, 구멍, 길과 같은 공간적 대상을 연상시키는데, 사실 작가가 보는 대상은 도시에 길, 광장, 터널이 자리잡으면서 어쩔 수 없이 남겨진 공간들이다. 그는 도시의 시설이 만들어질 때 그 구조를 위해 나누거나 채워져야 하는 공간의 유사한 형태가 오랜 시간 동안 작가에게 각인되었다고 말한다. 그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응시함과 동시에 장면은 눈 안에 가지고 있던 장면들과 만나게 되어, 보는 경험은 촉각, 청각, 후각 등 다른 감각으로 전환된다. 그렇기 때문에 김세은은 단순한 도시 풍경을 화폭으로 옮기는 것이 아닌 셈인데, 작가 역시 이 이미지를 ‘풍경’으로 호명하며 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장면을 접근할 때 큰 장소를 이루는 대상의 형태, 면 분할, 구성, 색과 톤을 보지만, 응시 과정에서 이미지 출처가 계속 확대, 편집되어 완전히 평평해지는 것은 경계한다. 이는 작가가 장면을 충분히 추상화 하되, 그 출처에 대한 정보를 완전히 지우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그림에서 대상을 향해 움직이는 작가의 동세가 느껴지고는 하는데, 이는 작가가 대상을 향해 다가가고 다시 멀어질 때 대상이 놓인 분위기나 주변과 연결되어 이루는 변화를 그림에 포함시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노혜리는 지난해 졸업전에 발표한 퍼포먼스 <삼만불>(2016)과 올해초 일본 아키요시다이 국제예술촌 레지던시에서 시작해 이번 하이트컬렉션 전시 준비기간 동안 완성한 신작 퍼포먼스 <로망스>(2017)를 선보인다. 이 퍼포먼스들은 미국에서 성장한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일인극의 형식으로 이뤄진다. 노혜리의 초기작 <천장 만나기>(2013)나 <잠자(Samsa)>(2015)가 신체가 공간의 조건과 부딪히거나 도구나 장치와 접촉, 대립하는 것을 보여주는 퍼포먼스였다면, <나성>(2016)과 <피아노>(2016)에서부터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하여 스토리텔링을 꾀하기 시작했고 무대를 확장해서 사용한다. 특히 졸업작품인 <삼만불>은 간결한 대사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꽤 긴 내용의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데, 작가는 상이한 오브제들의 매력적인 매치와 부드럽지만 강단 있는 무브먼트로 극의 완급을 조절한다. 신작 <로망스>는 중간중간 단어만을 열거하며 스토리텔링이 산문보다 운문에 더 가까워졌다. 축약된 스토리텔링에 맞추어 무대를 선형적으로 구성한 점이 특징적이다.

박천욱의 신작 <주체롭게 자라다 2>(2017)는 그간 작가가 해온 작업 시리즈들 중에서 ‘중간으로 자라다’라는 작품군의 작업 형식을 취한다. 사물을 절단, 접합하여 만든 대칭, 방사형 형태가 특징인 ‘중간으로 자라다’ 시리즈는 작가가 온전한 형태가 아닌 일부가 절단된 상태의 사물을 지각할 때 연결 부분을 상상해보거나, 두 개 이상의 동일 사물이 서로 접합되었을 때 사물이 원래의 기능을 잃고 잘려진 경계에서 나가려고 하거나 들어오려고 주춤하는 느낌의 동세를 느끼면서 작업하게 된 것이다. 신작 <주체롭게 자라다 2>는 이케아에서 파는 기성품을 이용하여 스스로 빛과 물을 공급하여 식물을 키워내는 자가성장 하는 사물의 상태를 보여준다. 기성품을 절단하고 다시 접합하는 과정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지만, 시각적 환영을 꾀하기보다 노동의 공정이 들어간 조각 작업을 중시해온 박천욱은 복잡한 제작과정을 꼼꼼히 수행하였다. 그는 “미술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미술의 시작은 작가로부터다”라고 말한 적 있는데, 작품제목에 쓰인 ‘주체롭게’라는 말 역시 미술제도, 특히 전시에서 작가가 쉽게 소비되는 것을 꼬집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서정빈은 외형뿐만 아니라 내부의 구조를 지니고 있거나 관절을 움직여 여러가지 자세가 가능한 조각을 선보인다. 전통적인 조각들은 대개 외형만을 취하는데, 서정빈의 레진 조각은 구상 단계에서부터 조각의 내부 공간이나 움직임에 대해 고민한 것이다. 이는 러시아 전통인형 마트료시카나 건담 프라모델 시리즈, 또는 변신 합체가 가능한 로봇 시리즈의 구조적 매커니즘을 전통 조각에 대입한 결과이기도 하다. 특히 일명 건프라 매니아들에게 건프라의 등급은 상당히 중요한데 내부 구조나 관절의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정도에 따라 등급을 매기기도 한다. 서정빈은 건프라의 구조적 디테일이 실존하지 않는 허구적 대상을 현실화 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였을 것이며, 애니메이션 속 거대 로봇이 미니어처로 축소될 때 리얼리티를 얻기 위한 방편으로 여러 가지 포즈가 가능한 관절과 내부 구조가 구현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돌이나 청동으로 만들어지는 전통 조각은 재료의 속성 때문에 내부 구조와 메커니즘을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서정빈은 캐스팅이 용이한 레진을 이용하여 이를 해결했는데, 레진은 내구성이 약한 재료이기는 하나 디테일을 살리기엔 적합한 물성을 지녔다. 한편, 두상이나 발 등 인체의 일부분을 조각적 재현 대상으로 선택한 점에서는 독일 초현실주의 조각가 한스 벨머의 에로틱하면서도 언캐니한 인형 조각의 영향이 감지된다.

이준용은 드로잉, 글, 설치, 퍼포먼스 등 여러 가지 형태의 작업을 해왔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6년 남짓한 시간 동안 그린 드로잉 작업들을 보여준다. 그의 드로잉은 거칠고 즉각적으로 보이지만 꾸준한 메모를 기반으로 하며, 작가는 몇 달 동안 쌓인 메모들에서 도출된 키워드들로 한꺼번에 수십 장의 드로잉을 진행한다. 그는 자신이 그려내는 이미지를 화면의 내외부에 암시되는 시스템에 의해 압출된 결과물의 찌꺼기들이라고 말하는데, 자신이 ‘무엇을 그릴 것인가’보다 ‘무엇을 그리게 만드는가’에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집중하는 것은 계급적 박탈감이나 정치적 무력감을 양산하는 사회 시스템이며 이에 대한 적의가 작업의 전반적인 기제로 작동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이 경험은 훗날 드로잉이 되리라>(2014)를 시작으로 하여 방 하나를 드로잉으로 채웠는데 디스플레이 하지 못한 드로잉이 훨씬 더 많은 만큼 전시 기간 동안 일부 드로잉은 교체 전시할 계획이다.

장종완은 색연필 드로잉 시리즈를 선보인다. 그는 유화, 색연필 드로잉, 애니메이션 등 회화에 기반한 작업을 해왔는데, 이중에서 색연필과 파스텔을 이용한 드로잉은 건식 재료의 섬세하면서도 부스스한 질감을 이용하여 비현실적이고 신기루 같은 서사의 이미지를 그린다. 그의 작업은 불안, 환상, 구원과 같은 단어를 키워드로 하는데 이는 작가가 인간의 삶에서 주요하게 느끼는 감정의 굴레이기도 하다. 작가에 의하면 인간은 불안감을 느끼게 되면 이를 마취시켜줄 환상을 찾게 되고, 그 속에서 안락함이나 구원을 받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 그는 다수의 맹목적인 믿음이 만들어내는 환상에 주목하고 이를 작품으로 적극 표현하는데, 종교화의 성스럽고 신비로운 느낌을 참조하기도 한다.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구름 이미지는 자연현상이자 감정상태의 묘사이기도 하지만, 풍경을 더욱 성스럽게 만들고 구도적으로는 원근법을 교란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작가가 많이 사용하는 형광 노랑, 에메랄드, 마젠타와 같은 색상은 공통적으로 광기를 내포하는데 색의 개별적인 기능에 따라서 불안과 환상이라는 이중적인 성격을 띤다.

전명은은 두 명의 조각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여 사진과 글로 구성한 <누워 있는 조각가의 시간>(2016)을 전시한다. 첫 번째 조각가는 30년 전 세상을 떠난 작가의 부친이고, 두 번째 조각가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부친의 친구이다. 전명은은 부친의 친구의 임종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조각가와 조각, 인간과 예술 등에 대해서 복잡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고 한다. 병상에 누워 있는 조각가의 모습은 마치 날아가는 화살이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았고, 이 모습을 지켜보며 전명은은 조각가는 무엇을 통해 보고 꿈꿀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누워 있는 조각가의 시간>에서 ‘조각가’는 무언가를 열심히 찾아 헤매다가 그걸 다 찾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젊고 열정적인 어떤 한 사람을 부르는 이름인데, 이는 곧 작가의 부친이다. 작가는 부친이 남긴 유작을 촬영하며 이 조각품들을 판독하는 것이 그를 이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이는 그간 전명은이 사진을 통해 만나온 사람들의 삶이나 직업, 그들이 다루는 매체에 대해서 존중과 이해의 태도를 지녀왔던 것과도 상통한다. 또한 그 역시 한때 조각을 공부하였기에 마치 조각가가 돌덩어리 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형상을 찾아나가는 것처럼 사진을 통해서 조각의 표면 너머, 그 근원에 대한 궁금증을 탐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우리는 영상 작업인 <도망치는 그림자>(2015)와 <세로읽기>(2015), 그리고 사운드 설치인 <회전문>(2012)을 전시한다. <도망치는 그림자>는 보르헤스의 『픽션』에 수록된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 속 특정 단어를 색으로 번역하여 이를 유리 표면에 옮긴 후, 달리는 버스 안에서 햇살을 받은 색점들이 다시 빈 페이지 위에 비치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이 작업에서 글로 꿰이지 않는 단어들은 색점이 되고 도시의 지형을 따라 다시 빛이 되어 세상의 소음과 섞인다. <회전문>은 스프링클러 소리를 녹음한 8채널 써라운드 설치 작업이다. 작가에 의하면 세상의 작동이 멈춘 한여름 밤 은밀히 작동하는 도시의 스프링클러는 도시공원의 기능을 말해준다. 작가는 도시공원이 근대화 과정에서 탄생한 이상화되고 가공된 자연으로써, 도시개발과 관련된 경제적 목적과 부르주아 중심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도시 구조의 중심요소라고 생각한다. 한편, <세로읽기>는 지금은 철거된 이화여대 학관 맨 위층에 있었던 레크레이션홀의 바닥을 드론을 이용해 촬영한 영상이다. 작가는 홀 이용자들이 바닥에 제각각 그려놓은 수많은 선들을 보면서 공간이 지닌 시간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졌다. 우선 그는 공간의 시간을 자신의 신체로 읽고자 직접 탐색하는 과정을 진행했고, 이후 드론을 이용해 공중 촬영을 진행했다. 몸으로 선을 읽었을 때와 다르게 드론의 눈으로 바라본 공간의 규칙(바닥의 선)은 수학적이지 않았다. 몸으로 읽었을 때 정확하다고 생각했던 선들이 비뚤어지고 기울어진 선들임을 확인하는 순간 이 선들은 불합리하고 불필요한 선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작가는 이를 새로운 사유에의 틈으로 보고자 하는데, 이는 존재와 인식, 세계의 구조와 그 틈에 대해 끊임 없이 질문하는 작가의 사유의 일환이기도 하다.

황효덕의 <시리면서 뜨거운 것을 위한 설계도>(2017)는 유년 시절 아궁이에 눈을 넣으면 녹아서 물이 될 틈도 없이 증발하는 희뿌연 수증기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하였다. 이 작업은 비물질적인 상태나 현상에 대한 상상을 가시적이고 촉각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한데, 작가는 시리면서 뜨겁다는 상반된 물리적 성질이 혼합되는 것을 상상하고, 어쩌면 불가능한 상상이자 제작할 수 없는 것을 위한 설계도를 전시장에 구현하고자 했다. 한동안 ‘온도’를 작업의 바탕으로 두고 작업을 진행해온 황효덕은 온도가 지극히 물리적인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관람자와 작업 사이의 심리적인 연결점을 만들어 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그래서 때로는 +/-1도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통해서, 때로는 영하 수십 도의 극단적인 온도를 통해서 신체의 감각기관에 의해 심리적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하는 시도를 해왔다. 그의 작업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고드름은 고체일 때는 날카롭고 차가운 성질을 지니지만 온도 변화에 따라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이 고드름을 견고하면서 동시에 가변적인 것으로써, 긴장과 불안을 유지시키는 조율 장치로 사용한다.

This entry was published on March 18, 2017 at 5:05 am and is filed under Default. Bookmark the permalink. Follow any comments here with the RSS feed for thi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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