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to Far

 
 

Artists

· 김솔이 Sollee Kim

· 서영 Seoyoung

· 송시영 Siyoung Song

· 임다울 Daul Rheem

· 잔쟈 Janjaa

 

Works

Installation Views

 

관람안내

전시기간 2026. 10. 24 (토) – 12. 19 (토)

관람시간 | 화 – 토 오후 12시 – 6시(매주 일, 월 휴관)

입장료 | 무료

 

하이트컬렉션

(06075) 서울시 강남구 영동대로 714 하이트 진로빌딩 B1, 2F

 

기획 | 이성휘, 이선주

그래픽 디자인 | 불도저

사진 & 영상 | 소농지

전시 공사 | 김준호

운송 설치 | 준아트

영상 설치 | 미지 아트

주최 | 하이트문화재단

 

Close to Far

Sollee Kim, Seoyoung, Siyoung Song, Daul Rheem, Janjaa

October 24 – December 19, 2026

 

Tuesday – Saturday, 12 pm – 6 pm

HITE Collection

714 Yeongdong-daero, Gangnam-gu, Seoul, 06075 Korea

 

Curated by Sunghui Lee, Sunju Lee

Graphic Design by BULLDOZER

photo & video by sonongji

Hosted by HITE Foundation

Supported by HITEJINRO Co.,Ltd.

 

하이트컬렉션은 2026년 하반기 젊은작가전으로 《모든 먼 것은 닫혀 있다》를 개최한다. 이 전시는 20~30대 작가 5인의 회화, 조각, 영상, 퍼포먼스 작품을 통해서 이들 특유의 시대 감각을 살펴본다. 특히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시간 인식과 현실, 가상에 대한 공간 인식에 주목한다. 참여작가들은 급변하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레퍼런스를 참조하며, 섬세하고 유동적인 태도로 시공간을 해석한다.

 

젠지(Gen Z)로 불리는 이들은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감각이 일상화 되어 있고, 급속도로 진화하는 AI 기술에 대한 숙지 또한 뛰어나지만, 그 어느 세대보다도 미래에 대한 낙관이 약하다. 기술에 대한 매혹과 불신이 공존하며, 기후 위기, 전쟁, 경제적 불안정, 주거 문제, 노동 구조의 변화가 자기 삶을 흔드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미래가 현재보다 나아지리라 믿기 힘든 만큼 이들의 시간 감각도  이전 세대의 선형적 감각과 구분된다. 미래는 이미 현재로 들이닥친 것 같고, 과거는 언제든 현재로 소환할 수 있는 데이터가 된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 사이의 안정된 지점이 아니라, 찰나처럼 스쳐가거나 아니면 모든 시간이 중첩되어 뭉쳐진 상태에 가깝다. 이러한 감각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마저 흐리게 하는데, 미디어 및 AI의 일상화가 이를 가속하고 있다.

 

전시제목 《모든 먼 것은 닫혀 있다》는 두 가지 상상을 함께 담는다. 과거와 미래, 즉 모든 먼 것이 한 점으로 수렴해 꽉 닫힌 현재를 이루는 것과, 동시에 아무리 다가가도 끝내 닿을 수 없는 모든 먼 것들이다.

 

이 전시는 이성휘와 이선주가 공동기획하고, (재)하이트문화재단이 주최한다.

 

김솔이(b. 1995)는 조각가, DJ, 모델, 퍼포머, 밈 컬렉터 등 다양한 페르소나로 활동한다. 조각가로서 그는 기존 작업을 다시 해체하고 재조형하는 과정에서 조각의 의미가 변하는 것을 주시한다. 그에게 조각은 하나의 이름으로 규정되기보다 공간과 상황에 따라 상이한 모습으로 변주된다.

〈스툴, 소파, 서랍장, 침대〉(2026)는 라운지와 같은 공용 공간에서 공용 또는 개인 점유 공간을 구획하고 형성하는 기능을 하는 가구를 조각의 재료로 삼은 작업이다. 작가는 소비에트 시절 일종의 다세대 공동주택인 코무날카와 네덜란드 구조주의 건축가 헤르만 헤르츠버거의 몬테소리 학교 설계에 담긴 건축적 이상주의를 탐구하고, 사용자에 의해 스툴, 소파, 서랍장, 침대와 같은 가구가 이상적이라 믿어왔던 질서와 체계로부터 이탈하여 다른 형태로 기능하는 것을 시도한다.

〈둠·아나테마·이누이〉(2025)는 난청, 이명, 어지러움 등 작가가 앓고 있는 청각 이상 증상에서 출발한 소리-조각이다. 자신의 청각 손실과 전조 증상을 뒤늦게 알아차린 작가는 돌발성 난청을 과거의 일이 현재 시점에 돌발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작가는 2채널 사운드로 세 대의 스피커를 재생해 난청과 이명, 어지러움의 청각적 경험을 구현하고, 이를 피아노를 연상시키는 조각의 형태로 구성했다. 난청, 이명, 어지러움에 의한 신체적 반응을 세 대의 스피커 사운드로 표현하며 양쪽 귀에 들리는 서로 다른 미세한 소리와 시간, 음량 차이로 인해 뒤틀린 시공간을 표현하고자 했다. 관객은 조각에 앉아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각 스피커에서 개별적으로 재생되는 소리는 조각의 내부에서 뒤섞여 하나의 청각적 경험을 형성한다. 소리를 듣는 행위는 조각을 바라보는 시각적 경험과 결합하고, 작품은 관객의 신체 가까이에서 감각에 개입한다. 관객의 개입으로 인해 과거에 지나간 징후는 현재의 감각 속에 다시 출현한다.

<서와 극 書 隙>(2026)은 작품 제목에 사용된 한자 書(책 서)와 隙(틈 극)으로 알 수 있듯이 책이나 텍스트 혹은 매체 사이에 존재하는 물리적, 개념적 틈새를 단프라 무빙박스를 활용하여 조형적으로 탐구한 작업이다. 작가에게 서(書)는 책 속에만 살아 숨쉬는 이야기에 대한 은유적 소재다. 그는 책의 페이지에서 검정 글씨와 흰 여백의 밀도에 의해 경계가 무효화되는 것을 상상한다. 검정 글씨가 커져 페이지를 덮으면 읽을 수 없는 검은 책만 남는다. 작가는 삶과 이상도 이와 같아서 이상은 현실과 거리가 있을 때만 이상인데, 너무 부풀면 현실을 덮어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바람인지 구분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말이 더 이상 무언가를 약속하지 않을 때 책이 검은 덩어리로 돌아오는 그 심상을 상상한다. 극(隙)은 미술이나 기획의 언어로 자주 쓰이는 ‘틈’을 가리키는 글자다. 작가는 이를 선이 아닌 면적이자 공간, 그 자체로 하나의 땅으로 여긴다. 또 숨은 뜻으로 경작을 쉬는 땅을 뜻하는 ‘한전(閑田)’과 생산하지 않을 시간을 허락하는 ‘휴경(休耕)’의 시간을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유휴지가 없는 세상 속의 나이고, 작가는 어느 쓸모에도 편입되지 않은 채로 벽면을 차지하는 구조물을 만들었다.

 

서영(b. 2001)은 어떤 대상이나 사건을 말이나 이미지로 표현할 때 실제 느끼고 기억하는 것과 표현된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대상과 사건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보여주려고 할수록 오히려 실제로부터 멀어지는 경험을 만들 수 있으며, 이런 차이가 특히 신체에 대한 이미지와 기억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탐구한다.

<빨간 망토와 자각몽>(2026)은 속도가 다른 두 신체가 병치된 영상이다. 영상의 두 화면은 꿈-현실의 상황으로 대비가 된다. 한 화면에서는 손깍지를 한 팔이 천천히 움직이면서 꿈 속에서의 신체 감각을 은유한다. 다른 화면에서는 산책하는 신체가 촬영한 도심의 보도블럭과 주변 풍경이 현장음과 함께 등장한다. 손깍지를 한 팔은 고속촬영모드로 촬영되었다. 늘어난 프레임 수 때문에 느린 화면처럼 보이고, 허공을 천천히 어루어만지는 듯한 손의 움직임은 촉각을 자극한다. 반면, 핸드 헬드 방식으로 촬영된 산책길 장면은 목적지를 두지 않은 듯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신체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두 화면은 상이한 신체 감각의 대비를 통해서 꿈(가상 공간)‒현실을 연결하는 신체의 감각과 역할을 강조한다.

<인용할 수 없는 책>(2025)은 개인적인 텍스트가 독해되는 방식, 특히 자기 진술 언어에 대한 서영의 관심에서 출발했다. 언어는 정보를 전달하고 사건을 연결하면서 하나의 서사를 만든다. 특히 그는 자기 진술이나 당사자성을 가진 텍스트가 특정 개인에게 귀속될 경우, 독자는 결국 그 개인을 향해 텍스트를 읽는다고 본다. 이 영상에서 작가는 텍스트의 독해가 독자에게 가까워지도록, 영상에 등장하는 텍스트의 고유명사, 인칭대명사를 ☐로 대체하여 서사를 특정인물에 귀속시키지 않고 독자의 몫으로 돌린다.

<회고록 읽는 시간 그리고 파레이돌리아>(2026)는 19세기 프랑스 파리를 뒤흔든 전설적인 사교계 인물이자 캉캉 무용수, 기수, 작가 등으로 활약한 셀레스트 모가도르의 회고록을 읽는 것에서 출발했다.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해 귀족 부인이 된 셀레스트는 자신을 향한 공격에 대응하고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네 권의 회고록을 썼지만 대중의 비난은 더욱 거세졌고 셀레스트는 출판을 철회하려는 마음과 지속해야 하는 상황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러나 셀레스트의 글쓰기는 이후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의 자기 서술과 연결되어 여성이 직접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삶을 표현한 문학적 계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서영은 셀레스트 회고록의 배경을 참조하지만 내용을 구체적으로 인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텍스트에 접촉하고자 ‘읽는 시간’에 비중을 두었다. 특히 작업에 삽입된 오르골 사운드는 독서 이후에 남는 잔흔을 청각적으로 번역하고자, 온라인 아카이브로 공개되어 있는 회고록의 전체 분량을 A4 용지에 출력해 종이 한쪽에 정렬된 페이지 번호로 악보를 만들어 제작한 것이다.

 

송시영(b. 1997)은 개인의 기억이 기계 및 장치를 거쳐 재구성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몸이 이미지로 남는 방식에 관심을 두고 있다. 영상 외에도 설치, 퍼포먼스 등 여러 매체를 다루면서 자신의 작업이 소통되는 방식과 조건을 민감하게 관찰한다. 최근 영화제를 통해서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회, 정치, 과학기술이 인간의 몸을 이상적으로 이미지화 하거나 통제, 소거해온 방식을 추적하는 영상 작업을 발표했다.

<우리가 사라진 모든 방법들>(2025/2026)은 미디어가 무빙이미지/영상을 통해 우리의 신체를 조직하거나 사라지게 한 역사를 따라가면서, 프레임으로 완전히 변환되지 않는 몸의 잔여를 다룬다. 일정 시간마다 송출되는 시보 사운드와 함께 전체주의적 관점에서 통제되는 신체 이미지를 교차시킨다. 영상에 등장하는 리펜슈탈의 올림픽 다큐멘터리는 운동선수의 몸을 영웅이나 그리스 조각상처럼 완벽한 신체로 묘사하여 배제와 왜곡을 통해 정화된 세계를 추구한 파시즘의 프로파간다를 이행했다. 집단체조 역시 개인을 지우고 집단을 극대화 하기 위해 기하학적 질서와 신체의 기계적 통제를 중시한 전체주의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키네틱 오라클>(2025/2026)은 인간 신체의 한계를 극복, 기술을 통한 감각과 제어의 확장, 그리고 이를 넘어서 몸의 초월을 꿈꾼 역사적, 기술적 계보를 추적한다. 1950년대 다이빙 훈련은 물리적 육체가 지닌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이었지만, 인간은 점차 자율주행과 같이 기계와 연결되고, 알파고처럼 자신을 능가하는 지능을 마주한 뒤, 마침내 가상 세계 속에서 육체 없이 존재하고 행동하는 초월적 신체를 창조해내고 있다.

<좀비가 있는 풍경>(2026)은 실제 게임 내용과 무관하게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를 차용한 광고로 유명해진 게임 ‘다크워 서바이벌’의 광고 문법을 정면으로 다룬다. 광고 속 쉘터는 하나의 경계다. 이 경계에서 좀비에게 먹히는 공포는 생존의 안도로 바뀌고, 생존자들을 먹여 살리는 관리와 돌봄의 역할로 이어진다. 좀비물의 계보에서 좀비는 주술사에게 조종당하는 노예에서 출발해, 목적 없이 먹기만 하는 존재, 곧 무차별적 섭취와 소비, 공포와 폭력의 상징으로 변모해 왔다. 반면 지브리풍으로 그려진 쉘터는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는 따뜻한 실내를 상징한다. 결국 바깥의 결핍과 실내의 안락함을 대비시키는 이 광고의 전략은 허기를 자극해 보는 이를 끝없는 소비의 충동으로 몰아간다.

 

임다울(b. 1992)은 환영에 대한 관심을 중심으로 보이는 것과 실재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드러내어 지각의 불확실성을 말하고자 한다. 이미 우리는 미술사의 교훈을 통해서 대상(예술)을 바라보는 순수한 눈은 없으며, 관습과 지각 심리가 투사되어 환영이 작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임다울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환영을 실체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최재연>(2023-2026)은 디지털 이미지가 프린팅된 천을 금속 지지체에 입히는 작업으로, 작가는 회화 작업으로 제시하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회화와 조각 사이를 오간다. 그의 회화-면은   이미지와 물질, 환영과 실재가 공존하는 각종 액정을 은유한다. 반투명한 실크천인 회화는 내부 틀인 금속 지지체를 드러내거나 감추며, 앞뒷면의 이미지는 서로 혼재되어 선명한 인상보다 이미지의 잔상과 환영의 단상을 남긴다.

<Comédie>(2026)는 회화와 조각이 서로 공유하는 특성인 연극성을 바탕으로 이미지와 각종 오브제들을 하나의 장면처럼 구성한다. 낮은 바닥에 이미지와 다양한 오브제들이 유리로 덮인 것은 관의 형태를 차용한 것으로 이는 죽음과 기억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다. 희극과 비극을 아우르는 ‘코미디’라는 양가적인 제목처럼 작품은 회화와 조각, 현실과 환영, 삶과 죽음 사이의 서로 맞닿는 틈을 드러내고자 한다.

<소포>(2026)는  <최재연>의 회화 작업을 옷처럼 갈아입히거나 <Comédie> 의 오브제로 진행하는 퍼포먼스 작업이다. 최초의 퍼포먼스는 참여자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기록을 남기지 않았는데, 객관적 기록이 부재함으로써 개인마다 기억의 편차가 발생했다. 이에 작가는 원래의 퍼포먼스 참여자들의 기억의 편차를 다루는 것을 추가한 내용으로 퍼포먼스를 진행할 예정이다.

<목성공포증>(2026)은 전시 이전의 공간의 모습을 촬영한 CCTV 화면이 전시장 한 켠에 자리한다. 작품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시야각에서 촬영한 CCTV와 같은 원경의 시점에서 공간을 바라보게 만든다. 영상의 뒷 벽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한자와 그림이 그려져 있지만, 전시장에 설치된 화면이 이를 가리면서 관객은 벽면의 이미지를 직접 볼 수 없다. ‘목성공포증’은 실제 의학적 진단명은 아니지만,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진 가상의 공포증으로 목성의 대적점이 마치 인간의 눈처럼 자신을 끊임없이 지켜보고 있다는 불안을 의미한다. 작가는 이를 초고해상도 이미지를 구현한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낳은 동시대의 신경증적 징후로 보고, CCTV의 전지적 시점을 빌려 관객의 시각적 접근을 특정한 방식으로 제한한다. 작품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된 기술이 역설적으로 시선을 제약하고 감시받는다는 감각을 증폭시키는 상황을 드러낸다.

 

잔쟈(b. 1999)는 개인적 경험과 관련된 레퍼런스를 수집해 작업을 전개하며, 이를 통해 개인이 주변 환경 및 사회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드러내고자 한다. 조각, 사운드, 퍼포먼스 및 연구 활동을 병행하며, 동시대 이미지 환경을 압도하는 인공지능 및 디지털 이미지 생산 기술 전반에 숨겨진 구조를 성찰한다. 특히 과학기술의 가속을 따라가지 못한 채 가려지고 소외 및 소거되는 현실을 다시 불러내 작업으로 재구성한다.

<길가의 무제>(2026)는 시카고의 필슨 거리에서 수집한 자동차 부속, 금속 파편, 철판 등으로 만든 일종의 악기다. 날카롭고 산업적인 소재들이지만 서로 부딪히면 처마 끝에 달린 풍경처럼 맑은 소리를 낸다. 작가에게 시카고는 개인주의와 파편화가 극단에 이른 도시다. 젠트리피케이션을 거치며 공동체와 연대는 해체되고 소외와 분리는 일상이 되었다. 길가에 흩어져 있던 파편들이 악기가 된 모습은 이 도시의 역설을 보여준다.

<Directional>(2026)은 첨단 방위산업의 꽃인 미사일 기술과 그 가속을 역재생하는 시도로서, 공기역학적 속도감을 물질화한 작업이다. 고속철도, 항공기, 비행체의 앞코 모양을 캐스팅한 노즈콘은 시계추처럼 진자운동을 하거나 정지 상태에 놓여, 기술의 가속이 만들어낸 세계 안에 이미 놓인 우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질문한다.

<궤도와 현상>(2026)은 산업소재인 철판 뒷면에 익사이터 스피커를 부착해 철판 자체를 진동하는 발음체로 만든 사운드 설치 작업이다. 곡면으로 휘어진 여러 장의 철판은 로켓이나 미사일의 매끈한 외피를 연상시킨다. 작가는 이 외피의 내부를 상정하고, 늘어진 역재생의 미사일 발사 소리를 발음체가 된 철판의 소리와 겹쳐 놓아, 속도와 기술을 미화하는 가속사회, 그리고 파괴를 매끈하게 포장하는 방위산업의 아이러니를 물질적이고 공간적으로 감각하게 한다.

<자율⇄자동화>(2026)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볼펜, 레이놀즈 로켓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출시된 이 볼펜은 당대 첨단 기술의 상징인 로켓 형태로 디자인됐고, ‘물속에서도 써진다’는 과장 광고를 앞세워 품질보다 이미지를 파는 전략을 택했다. 속도의 형상을 따라 진화한 펜은 로켓의 가장 작고 친근한 형태다. 그러나 기계가 자율을 얻을수록 인간의 결정은 자동화되고, 우리는 펜과 로켓으로 세계를 잿더미로 만들고 있다.

<조립적 글리치>(2026)에는 잔쟈가 UGC 크리에이터로도 활동한 경험과 방산 박람회에서 통역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 UGC 크리에이터는 광고를 평범한 사용자의 솔직한 후기처럼 보이게 만들고, 통역사는 자신의 목소리를 지운 채 남의 말을 매끄럽게 옮긴다. 두 일은 모두 자신을 지우거나 추상화함으로써 대상을 친근하고 신뢰할 만한 것으로 보이게 하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인식을 조작할 수 있는 구조를 공유한다. 작가는 숏폼 형태의 방산 광고 영상을 만들고 이를 모자이크 필름으로 균열시켰다. 이 영상은 잿더미 위의 펜과 로켓을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