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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안내
전시기간 2025. 10. 24 (금) – 12. 13 (토)
관람시간 | 화 – 토 오후 12시 – 6시(매주 일, 월 휴관)
입장료 | 무료
하이트컬렉션
(06075) 서울시 강남구 영동대로 714 하이트 진로빌딩 B1, 2F
기획 | 이성휘, 이선주
그래픽 디자인 | 이동영
전시 공사 | 김준호
운송 설치 | 준아트
주최 | 하이트문화재단
Feel like having some brandy
Yebin Kang, Lee Oee, Eunsi Jo, Eunhyung Cho
Oct 24 – Dec 13, 2025
Tuesday – Saturday, 12 pm – 6 pm
HITE Collection
714 Yeongdong-daero, Gangnam-gu, Seoul, 06075 Korea
Curated by Sunghui Lee, Sunju Lee
Graphic Design by Dongyoung Lee
Hosted by HITE Foundation
Supported by HITEJINRO Co.,Ltd.
회화 전시의 운명
《브랜디를 마실 것 같은》1은 하이트컬렉션이 2014년부터 연례적으로 이어온 젊은작가전의 일환으로 2025년에는 디지털 네이티브로 성장한 Z세대 작가들의 회화를 통해 이 세대의 회화 감각의 일면을 살핀다. 그간 하이트컬렉션은 젊은작가전을 통해서 아직 미술사나 미술시장에 길들여지지 않은 작가들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포착하려고 노력해왔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강예빈, 이오이, 조은시, 조은형은 미술학교 울타리를 갓 벗어났거나 졸업 예정인 20대 후반 작가들이다. 네 사람은 유년기부터 그림을 그리며 성장하여 회화 매체를 자연스럽게 다루면서도 회화에 대한 어떤 당연함들로부터는 사뭇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강예빈과 조은형의 회화에서는 이미지의 행간에서 내러티브가 작동한다. 그들의 회화에는 사건의 이면이나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한 기시감이 돈다. 추상, 구상의 형식적인 구분보다는 화면에서 상상할 수 있는 내러티브가 화면의 성격을 규정한다. 두 작가는 이미지의 허구성을 물질적 화면으로 붙들고자 하는데 이때 이미지의 내러티브는 확정적이지 않다. 이미지가 화면을 투과하는 방식이나 다른 화면들과 연결되는 방식의 변주에 의해서 이미지의 행간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행간은 가변적이어서 한정된 화면 이상의 새로운 내러티브의 가능성을 지닌다. 이오이와 조은시는 합판을 회화의 지지체로 즐겨 사용한다. 두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이미지의 성격은 상이하지만, 붓질이 쉽지 않은 합판을 상대하면서 합판이 이미지를 받아들이거나 배척하는 성질을 즐기고 있는 것은 공통적이다. 통상적으로 회화는 벽을 떠나기 어렵다고 여겨지지만, 이들이 합판을 사용할 때 벽의 존재는 절대적이지 않다. 이오이의 회화는 언제든 바닥으로 누울 태세이고, 조은시의 회화는 다리를 달고 서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오이의 화면은 자연을 카모플라주 하며 은신할 수도 있고, 조은시의 화면은 끊임없이 분절되어 언젠가는 액정 화면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이번 전시에서 강예빈의 회화는 전시의 행간을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작가는 눈앞의 대상이 드러내지 않는 어떤 것을 함께 불러 일으키는지에 관심을 둔다. 때로는 ‘곤란한’ 시선의 정체를 궁금해 한다.2 그는 직접 촬영한 사진뿐 아니라 발견한 이미지를 캔버스로 가져와서 의도적 오역과 기이한 장치를 추가하여 가시/비가시가 맞물린 이면의 층을 구성한다. 의미심장하면서도 모호한 화면은 카메라 플래시의 반사광, 반들반들한 사물 표면, 매끄러운 회화 표면에 의해 극대화된다. 그의 회화가 전시장에서 공간적 장치의 역할을 할 때는 낯선 기운이 증폭된다. 일례로 <Knife>(2023), <백막>(2024), <Lispector and Hand>(2025)가 나란히 걸린 벽에서 세 작품은 함께 보여짐으로 인하여 훨씬 서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전시장 2층에 걸린 <흑막>(2024) 역시 다른 작가들의 작품 사이에서 감시자 또는 목격자의 얼굴을 한다. 낱장의 이미지가 가지는 기운이 전시에서 어떤 공간적 장치나 역할로 설정되는지에 따라 더욱 생경한 분위기나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조은시의 회화는 여러 개의 화면을 지닌 몸에 가깝다. 몸을 지닌 회화는 전시장 구석이나 한복판에 서서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연극적인 장면을 만들기도 한다. 각목과 합판은 조은시 회화의 몸을 구성하는 주된 재료이며 작가는 물감으로 이들의 물성을 완전히 은폐하지 않는다. 그는 사물이나 조형 요소들 간의 닮음으로부터 시작하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불가항력적인 닮음의 맥락을 추적하려고 한다. 그에게 닮음에 대한 의문은 개인적인 사색이나 우연한 발견으로부터 출발하지만 단순한 외형의 유사성보다는 논리를 건너뛰는 속성의 공유로부터 비롯된 개념적, 정신적 연결에 가깝다. 산, 바다, 나무, 돌 등 자연 현상과 결부된 요소들과, 점, 선, 도형과 같은 기하학적 요소들은 그의 회화를 혼잣말이 아니라 넓은 세상을 향한 발언이 되게 한다. 화면에는 사실적으로 묘사된 대상과 도식화된 그래픽이 혼재하는데, 작가가 상당한 게임 매니아이기도 해서 게임 인터페이스에서 체득한 세계관이나 공간 인식이 물리적 공간에 이미지를 구성할 때에도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회화가 각목, 합판, 벽돌과 같은 재료로 꽤 투박한 점은 디지털 인터페이스의 한없이 가벼운 이미지들과는 대조가 된다.
이오이는 자신의 회화 근육이 집안일이나 아르바이트에서 만들어지는 생활의 근육과 다를 바 없이 몸 곳곳이 쑤시고 불편할만큼 강한 동작과 물리적 자극이 반복되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그림을 왜, 어떻게 그리는가에 대해 당장의 답을 구하기보다는 그리기의 욕구와 충동 그 자체에 몰두하여 그 과정을 합판 위에 고스란히 남긴다. 필사적이고 절박하고 충실한 생을 갈망하듯 그의 회화는 합판 위에 물감을 칠하고 긁어내기를 반복하면서 필사적이고 절박하고 충실한 그리기를 수행한다. 송곳, 톱, 그라인더로 표면을 더 깊고 거칠게 파내기도 하고 불에 그슬리기도 한다. 도구를 이용해 화면에 물리력과 화력을 가할수록 물감은 합판과 한 피부가 된다. 작가가 산책 중에 만나는 이끼 낀 길처럼, 낡은 벽처럼, 녹슨 문처럼 회화는 자연이 만들어낸 것 같은 변화를 체득한다. 본래 건축자재인 합판의 마감 되지 않은 면은 회화를 위해 정돈된 면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오이의 회화는 평범한 일상성을 갈망하듯 닳아진 바닥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뭉쳐서 뻐근한 생활 근육으로 합판을 갈고 닦아서 부지런히 몸의 움직임을 만들어간다.
조은형은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가장 큰 원동력으로 ‘그림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믿음을 꼽는다. 그의 회화는 이 믿음과 허구가 만들어내는 함정 사이에서 나른한 긴장을 탄다. 조은형은 드로잉을 기반으로 형상을 발전시켜 좀 더 내밀한 허구의 내러티브로 작동하기를 바란다. 그는 “허구를 빌려오며 무언가를 믿는다는 말에는 함정이 있지만 역설적으로 함정에 가까운 곳에 믿음이 붙어 있어 그곳으로 향하는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3 작가가 자신의 회화에 대해서 자주 사용하는 ‘허구’나 ‘내밀함’은 비밀스러운 사건을 상상하는 것에 가깝다. 화면 위에서 사건은 형상이 상상을 좇으면서 또는 상상이 형상을 좇으면서 엎치락 뒤치락 하는 사이에 펼쳐진다. <Gochi, Mayu>(2024)는 ‘무언가를 안고 덮고 있는 내밀함을 상상하며, 감추고 있는 동시에 나타나는 이미지, 심장 속의 심장 또는 안과 밖을 지나는 바람 같은 것’을 그린 것이다.4 이는 사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보이지 않아야만 하는 것을 들여다보려는 인간의 의지로 인하여 몽상이 형성된다고 한 바슐라르의 생각과 연결된다.5 <Delta>(2025)는 삼각주와 땅굴에 대한 작가의 사색에서 시작되었고, 동굴에 대한 문학가들의 몽상과 닮아 있다.6 그의 회화는 형상이 허구에 대한 믿음을 공고히 하는 형국이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이제 회화의 지지체로서 물리적인 벽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오랫동안 회화는 벽이 구원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지만, Z세대의 회화를 관찰하면서 이들에게 물리적인 벽은 이미지가 경유하는 유동적인 조건에 가까워 보였다. 사실 벽과의 관계가 느슨해진 회화가 미술사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들이 공간의 물리적 벽과 관계하는 방식도 새로울 것은 없다. 그렇지만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이미지 경험을 기준으로 생각해본다면, 과거에 이미지를 물리적으로 지탱하던 벽의 기능을 이제는 도시의 표면, 장치의 표면, 오브젝트의 표면이 맡고 있지 않은가. 거리의 미디어 파사드나 빌보드, 디지털 장치의 디스플레이, 또는 디지털/물리적 오브젝트(사물)가 이미지를 고정하고, 프레이밍 하고, 그것의 가시성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전시장에서보다 인스타그램에서 더 많은 회화(라고 믿는 이미지)를 보고 있지 않은가. 이제 회화와 벽의 관계는 이미지와 표면의 여러 물리적 관계 중 하나일 뿐이다. 이번 전시의 작업들 역시 동시대 이미지로서 우리 삶의 도처에 존재하는 표면들에 언제라도 들러붙거나 섞일 수 있다. 하이트컬렉션의 벽은 이 작품들을 공간적 입장에서 잘 붙들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고, 우리는 인스타그램 피드나 스토리로 분산되고 휘발되는 전시의 운명을 잘 알고 있다. 동시대 전시가 이미지로서 휘발되는 운명에 아랑곳없이 회화는 여러 장치와 표면을 경유하면서 성공적인 곡예를 하길 바란다.
글/ 이성휘
- 전시 제목은 조르주 페렉의 소설 『사물들』의 한 장면에서 착안했다. 소설은 새벽까지 브랜디를 마시는 주인공들의 모습으로 1960년대 청년들의 욕망과 불안을 환기한다. 페렉은 사물들에 대한 집요한 묘사로 물질만능사회에서 휘청이는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었는데 현재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이 전시는 페렉의 소설에 오늘날 우리의 이미지 경험을 겹쳐 보고자 한다. ↩︎
- 강예빈의 포트폴리오(2025)에서 작업노트 ‘곤란한 만남(Malséance)’ 참조. ↩︎
- 조은형의 포트폴리오(2025)에서 학부 졸업전시 작품(2021)에 대한 작가의 글 인용. ↩︎
- 조은형의 포트폴리오(2025)에서 《HOP》(교토예술대학, 교토, 2024)에 대한 작가의 글 참조. ↩︎
- 가스통 바슐라르,『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 정영란 옮김, 1판(파주: 문학동네, 2002)[전자책, 2024], 1장 물질적인 내밀성에 대한 몽상들. ↩︎
- 위의 책, 6장 동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