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 포에버 Live Forever

live forever_posArtists

· 김경태 Kyoungtae Kim

· 오연진 Yeonjin Oh

· 이민지 Minjiyi

· 전명은 Eun Chun

· 정희승 Heeseung Chung

Works

Installation Views

Publications

Media Coverage


 

Exhibition Information
Exhibition Period: October 18 – December 14, 2019 (Opening : 6pm, October 17, 2019)
Exhibition Venue: HITE Collection
Opening Hours: Monday – Saturday: 11am – 6pm (Closed on Sunday, Holiday)
Admission free
Hosted by HITE Foundation
Supported by HITEJINRO Co.,Ltd.

 

관람안내

참여작가 : 김경태, 오연진, 이민지, 전명은, 정희승

전시기간 : 2019년 10월 18일 – 12월 14일 (개막행사: 2019월 10월 17일, 목요일, 오후 6시)

관람시간: 월 – 토,  오전 11시 –  오후 6 시 (일요일, 공휴일 휴관)

입장료: 무료

주최: 하이트문화재단

후원: 하이트진로(주)

 

《리브 포에버》는 이미지 범람의 시대에 예술로서의 사진, 그리고 그 사진의 영속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사진은 세상에 등장한지 20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등장 순간부터 미술사에 의해 재현 수단으로써 회화와의 대결 매체로서, 또는 영상미학이나 미디어이론 등의 관점에서 다각도로 분석되어 왔고, 디지털 사진 등장 후 최근 20-30년 동안은 물질 기반이 아닌 데이터로서의 속성이 중요해졌다. 현재의 사진은 회화, 그래픽, 영상과 함께 다같이 이미지이자 데이터로 귀결되어가는 상태이고, SNS 플랫폼을 타고 광속도로 무한 확산되고 있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사진은 플랫폼을 외면하여 고립되거나 아니면 결탁함으로써 속도에 휩쓸려 가거나 그 운명을 양자택일 해야 하는 지경이다. 속도를 이겨내고 사진은 영속할 수 있을까? 특히 예술로서의 사진은 영속할 수 있을까? 이 전시는 이러한 질문을 안고 출발하였다.

사진은 대상이 존재했음이 이미 과거라는 점에서 죽음을 전제로 한다고 말해지기도 한다. 롤랑 바르트는 죽음이 사진의 본질이라고 말했다.[1] 그러나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은 사진은 실재의 파편으로서, 부재하면서도 현존하는 실재라고 보았다.[2] 사진이 과거, 현재, 미래 어느 시간을 담지하는 것으로 보든, 작금의 사진이 우리를 ‘스치는’ 시간은 광속에 가깝다. 암흑 속에서 1500년 전 출발해 지구에 도달한 빛도 그대로 직행해 디지털 플랫폼의 데이터 소용돌이에 뒤섞여버리고 만다. 광속으로 와서 광속으로 멀어지는 사진은 발터 벤야민이 말한 초창기 사진이 지닌 아우라를 가질 틈이 없다. 그는 19세기 전반 사진이 산업화되기 전에 활동한 나다르, 위고, 힐 등의 사진에서 피사체와 공간, 시간이 서로 얽힌 아우라라는 멜랑콜리한 정서를 추출해낸 바 있다.[3] 그러나 과학기술이든 예술이든, 발전이라 일컬어지는 어떤 성취가 그것이 없던 시절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가역적임을 부정할 수 없고, 사진 역시 아우라를 위해 19세기의 속도로 되돌아가는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사진이 과거이자 죽음을 전제로 한다는 관점이 곧 사진의 소멸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사진이라는 개념과 실재 또한 이 세상에 등장한 이상 비가역적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숙명을 지닌 예술가들, 특히 사진작가들에게 디지털 데이터의 소용돌이, 인터넷과 SNS의 속도는 어떠할까? 무감각의 무아지경으로 내몰릴 때 사진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리브 포에버》의 참여작가들인 정희승, 전명은, 김경태, 이민지, 오연진의 사진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속도를 조절해 나가면서 일정한 마찰력을 만들어 낸다. 사진에 대한 고민과 이슈는 다르더라도 이들은 각기 이미지의 행간에서 만들어지는 시적 언어로서, 대상을 시지각 이상의 감각으로 담아내려는 사진의 욕망으로서, 시지각적 관습에 대해, 시공간을 표류하는 사진적 주체로서, 그리고 카메라리스 작업을 통해 사진의 광화학적 속성과 매체적 본질을 탐구하면서, 저마다의 완급으로 사진을 한다. 따라서 《리브 포에버》는 전시장 안에서 물리적 실재로 제시되는 작가들의 작업을 마주하면서 하나의 사진이 담지한 속도와 그 속도를 조절하는 마찰력이 사진을 예술로서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정희승: 이미지의 행간

정희승의 사진은 대상의 본질과 이미지의 관계와 간극, 그리고 이를 포착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보여왔다. 그의 사진은 대상으로부터 독립하여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진 이미지로서 인정받는다. 또한 사진이 대상의 물리적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대상의 일부로 현존하고 있는 이미지의 속성을 독립시키는 일임을 보여준다.[4]

이번 전시에서 정희승은 지난 10여년 간 촬영한 사진들 중에서 ‘사물(objects)’을 테마로 하여 선별한 작품들을 약 20미터에 달하는 전시장 벽에 배열하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그가 정교하게 배치한 사진들은 한편의 시와 같은 언어적인 호흡을 만들어내는데, 관람객은 전시장 벽을 따라 걸으며 작가가 만들어낸 이미지의 행간과 호흡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정희승은 인물, 사물, 공간 등 다양한 대상을 사진으로 포착해왔다. 그의 작업 여정은 ‘페르소나(Persona)’, ‘리딩(Reading)’, ‘고스트(Ghost)’와 같은 초상 연작을 시작으로 하여, ‘스틸-라이프(Still-life)’, ‘부드러운 단추들(Tender buttons)’, ‘장미는 장미가 장미인 것(Rose is rose is rose)’, ‘사라짐(Disappearance)’과 같은 정물 사진, 그리고 (구)국군광주병원과 같은 역사적 공간을 촬영한 ‘기억은 뒷면과 앞면을 가지고 있다’(2018-2019) 작업으로 이어져 왔다. 이번 《리브 포에버》전에서는 사물 개념에 포커스를 두고, ‘스틸-라이프’, ‘부드러운 단추들’, ‘사라짐’ 시리즈 등에서 선별한 작품들을 배치, 배열하여 구성하였다. ‘스틸-라이프’ 작업은 주변의 여러 사물을 촬영해온 사진들인데, 사물을 촬영하여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제시, 배치하여 낯선 이미지 또는 하나의 오브제처럼 보여준다. ‘부드러운 단추들’은 시인 거트루드 스타인의 동명 시에서 차용한 제목으로, 유동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있는 대상이나 신체를 드러내고자 한 작업이다. 대상은 부드러운 상태의 사물이지만 그것에 붙은 이름과의 관계는 느슨하며, 또한 불안정한 상태이지만 공격적이지도 않은 속성을 지닌다. ‘부드러운 단추들’은 ‘장미가 장미인 것’, 그리고 ‘사라짐’ 작업과 함께 의미의 불가능성, 즉 도달할 수 없는 이미지의 의미에 대해 숙고하는 작업이다.

 

전명은: 시지각을 초월하는 사진의 근원적 욕망

전명은은 그간 사진 작업을 비롯해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서 시지각, 즉 ‘본다’는 것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해왔다. 한동안 그는 시각 및 청각 장애인, 폴리(Foley) 아티스트, 천문학자 등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서 시지각 뿐만 아니라 청각, 촉각 등 다양한 지각 방식으로 감각하고 이를 교감하는 방법을 탐구해왔는데, 이는 본다는 감각 너머, 사진과 카메라의 근원적 욕망을 대면하고픈 작가에게 필요한 과정이었다.

이번 《리브 포에버》전에서 전명은은 기계체조 선수들의 움직임 직전의 순간을 포착한 ‘플로어(Floor)’(2018-2019) 시리즈를 선보이는데, 움직임 자체보다는 움직임에 임박한 인물을 포착하면서 사진이 담지하는 어떤 생명력에 대해 탐구한다. 즉, 텅 빈 마루를 향해 도약 직전에 서 있는 선수들의 집중, 긴장한 표정에서 살아 있는 감각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고자 한다. 그가 살아 있는 감각이자 생명력이라고 칭하는 것은 청각, 시각, 촉각 등 감각들에 대한 작업들로에서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최근 작가노트(2018)에서 전명은은 바르트가 “사진가의 기관은 눈이 아니라 손가락”이라고 한 말을 인용하며, “셔터를 누르는 순간마다 사진가의 손가락은 곧바로 또 다른 순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게 아닐까?”라는 단상을 적었다. 그는 조각가였던 부친의 조각에서 ‘감각의 끝이 닿는 곳에 있는 건 살아 있는 느낌’이라는, 어떤 ‘생명력’을 느꼈다고 고백한 바 있는데, 이것은 작가가 시각 장애인들이 점자를 읽는 손끝의 촉각을 살아 있는 느낌 혹은 생명력으로 생각한 것과 상통한다.

한편, 전명은은 청각 장애인 배우들과의 프로젝트를 통해서 수화가 이들의 절대적 시감각을 대변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들에게 세계는 들리지 않는 세계라기보다는 보는 것으로 지배된 세계라는 것이다. 또한 천문학자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인간이 천체망원경 등의 장치를 통해 시각 능력을 연장하고자 하고, 끊임없이 보았다는 행위의 증거로써 천문사진을 기록해왔다는 관점을 제시하였다. 그는 에밀 졸라가 “우리는 어떤 것이 사진 찍힌 것을 보기 전에는 그것을 정말로 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5]고 한 말을 인용한 바 있는데, 이것은 ‘본다’는 행위의 증거로 인식되고 있는 사진의 본성과 또 그 너머를 추구하는 사진의 욕망을 가늠해보고자 하는 작가의 생각을 대변해준다.

전명은은 “결국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간극은 망막 위가 아니라 우리의 머리 속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말한다. 즉, 이미지는 시각에 의해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감각적 요소들이 동원되어 지각된 총체라는 것이다.

 

김경태: 시지각적 관습을 이탈하는 사진

김경태는 작은 사물을 확대 촬영한 거대한 이미지로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비현실적인 물성을 드러내거나, 카메라의 광학적 원근법을 극복하는 작업을 통해서 시각적 관습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특히 작가는 렌즈를 고정한 상태로 카메라를 앞뒤로 옮기며 촬영하는 포커스 스태킹(focus stacking) 기법을 써서, 일반 사진으로는 불가능하나 건축 도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행 투시를 사진에 시도해왔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의 사진은 실재하는 것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비현실의 이미지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그의 ‘Printed Matter HW’(2016) 시리즈와 ‘The Serial Compositions’(2018) 시리즈에서 작업을 선별해서 보여준다. ‘Printed Matter HW’는 경도가 높은 물(센물)을 끓이고 남은 침전물을 포착한 사진이다. 센물을 냄비에 넣고 끓이면 바닥에 침전물이 쌓인다. 이것을 고배율로 확대시킨 이미지는 우리가 육안으로 습득한 물성에 대한 지식이 선입견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즉 고도로 확대된 이미지는 침전물의 물성에 대한 정보를 넘어섬으로써 우리에게 이미지의 본질에 대해 의문을 갖게 만든다. ‘The Serial Compositions’은 애초에 A4 판형의 백색 책자를 평행 투시로 촬영해 동일한 판형의 인쇄물로 제작하는 프로젝트에서 시작하였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사물을 고배율로 확대하여 종이가 지닌 본래의 물성으로부터 낯설게 만드는 시도뿐만 아니라, 일부 사진은 사진이라기 보다는 컴퓨터 그래픽처럼 보이는 이미지로 만들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작가는 역시 포커스 스태킹 기법을 사용하여 평행 투시를 시도하였다.

광학적 원근법을 극복하려는 김경태의 사진은 사람들이 ‘이미지에 약간의 왜곡이 있어야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 그의 관찰에서 비롯되었다.[6] 그는 이를 사진의 왜곡, 보정에 대한 역설로 보는데, 특히 건축 사진 쪽에서 사용해온 평행투시법을 주목하여 자신의 작업에 활용하게 되었다. 평행투시법은 소실점이나 원근감이 없이 피사체가 지닌 선과 면을 평행하게 투영하는데, 특히 건축물의 평면과 입면을 원근 없이 평행하게 투시한 20세기 중반 건축 사진에서 많이 발견된다. 작가가 고도로 접사 촬영한 이미지이나 포커스 스태킹한 이미지는 모두 화면의 모든 지점에서 초점이 고르다. 하나의 화면에서 더 집중되거나 덜 집중되는 부분이 없게 된다. 이는 르네상스 이후로 당연시된 광학적 원근법이나 다양한 수단으로 왜곡시킨 이미지를 오히려 자연스럽게 여기도록 관습화된 우리의 시지각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민지: 시공간을 표류하는 사진적 주체

이민지는 스스로 “본 것과 못 본 것을 사진으로 찍고 있다”고 말한다. 작가가 ‘사이트-래그(Sight-lag)’라고 명명한 ‘시-차’는 본 것을 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에 대한 표현이며, 대상을 마주하는 자신의 위치가 좌표값을 기준 삼더라도 날씨, 기억, 심상 등에 의해 결국 어긋나거나 표류하는 것에 대한 질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2017년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촬영한 ‘사이트-래그’ 시리즈와, 1년 후 아이슬란드 여행을 떠올리며 자신의 여행지를 구글어스를 이용해 다시 찾아본 ‘필드:트립’ 작업을 함께 보여준다. 작가의 2017년과 2018년 여행은 각각 실제 물리적으로 행한 여행(2017)과, 방안 컴퓨터 앞에 앉아 구글어스로 접속한 인터넷 여행(2018)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2017년 여행 당시 작가가 사진을 찍을 때마다 남겨놨던 좌표값으로 인해 서로 연결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구글어스를 통한 여행 역시 인터넷 상에 백업되어 있는 세계로의 필드 트립이지 리얼 타임으로 동기화된 시공간 여행이 아니다. 또한 작가가 남겨둔 좌표값 중 일부는 언덕, 폭포, 얼음 덩어리에 태그 되었던 탓에 1년의 시차 후 어긋나거나 누락된 데이터가 되기도 하였다. 그의 필드 트립은 몇 가지 패턴을 반복하여 이루어졌다: “구글어스를 켠다. 검은 배경에 푸른 얼룩이 진 구가 빙글빙글 돈다. 지난 필드 트립에서 저장한 마지막 아이콘을 클릭한다. 시점은 빠른 속도로 구름 형상의 픽셀들을 뚫고 내려간다. 물방울을 튀기지 않고 매끈하게 수면 아래로 잠기는 솜씨 좋은 다이빙 선수처럼. 잠시 기다리자 흐릿하던 픽셀들이 차례로 또렷해진다. 세계는 이제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7] 마치 게임에 접속하듯 이루어진 이민지의 구글어스 여행은 “이 세계에서 시간은 일종의 형태와 거리로 축적되고 그 시간들은 다시 겹겹의 레이어들로 업데이트/백업되곤 했다”[8]는 작가의 표현처럼 가상 공간에서의 경험에 가깝다. 그래서 “내가 본 것은 백야가 시작되던 하늘이었을까, 꺼지지 않는 불빛이 새어 나오는 모니터 화면이었을까”[9]라는 작가의 자문은 실재이면서도 실재일 수 없는 시공간적 경험에 대한 환기이자, 시공간을 표류하는 사진적 주체로서 본 것을 안다고 말하기 어려운 ‘시-차(sight-lag)‘에 대한 고백이다.

 

오연진: 사진의 광화학적 속성과 매체적 본질에 대한 질문

오연진은 사진을 경계의 매체이자 문제적 매체로 인식한다. 우리는 사진을 눈의 대체물이자 재현 수단으로 쉽게 간주하지만, 오늘날 사진은 더 이상 피사체를 투명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디지털 사진이 등장 하면서부터는 회화의 반대항으로 정의되었던 사진의 속성들이 부정됨으로써 사진은 독립된 카테고리의 매체가 아니라 ‘이미지‘의 차원으로 용해된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지는 연구자들도 있다. 오연진은 사진의 매체성을 연구한 제프리 배첸을 인용하며 사진을 문제적인 매체로 인식한다. 배첸은 카메라를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선택적인 요소로 축소시켜 사진의 광학적 속성에 가려져 있던 광화학적 속성을 강조한 이론가다.[10] 오연진은 사진을 어느 하나의 속성으로 정의하기 보다는 다중적인 맥락으로 바라보고 그 사이에 교차되는 지점을 발견하고자 하는데, 불투명한 사진이 어느 순간에 투명해질 수 있는가, 재현적인 사진이 어떻게 추상화될 수 있는가, 반대로 추상적으로 보이는 사진이 어떤 의미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가 등등 사진의 매체성을 연구하더라도 매체성 자체가 부정되어 온 역사적인 흐름을 염두하여, 사진을 경계의 매체로서 탐구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서 오연진은 ‘카메라 없이’ 제작한 사진들을 선보인다. 사물을 밀착 인화하거나, 피사체를 촬영한 필름 없이 오직 감광에 의해 제작한 사진들이다. 예컨대, <Contact>(2017)는 스마트폰의 카메라 어플리케이션을 켠 상태에서 밀착 인화한 작업이다. 이 작업은 스마트폰의 기본적인 카메라 어플리케이션뿐만 아니라,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여러 SNS어플리케이션의 촬영 모드를 밀착인화 하였는데, 인화지에 직접 피사체를 올려 작업한 만 레이의 레이오그라프(Rayograph)를 연상시키면서도, 카메라와 카메라의 인터페이스 자체가 피사체이자 필름이 되었다는 점에서 매체로서 사진의 해부 사진과도 같다. 신작 <Account>(2019)는 빛과 감광성 지지체(인화지)가 조응한 결과물로서 그 자체로 실재성을 띤 하나의 사물로 볼 수 있다. 이 작업은 작가가 OHP 필름을 이용하여 기하학적 패턴을 만들고, 이를 확대기에 올린 후 노광시켜 제작하였다. 암실에서 작가는 확대기에 입력하는 RGB수치, 노광시간, 인화지에 가하는 움직임, 현상액을 바르는 횟수 등으로 몇 가지 변수를 만들지만, 최종적인 이미지는 작가의 컨트롤을 벗어난다.

 


[1] 롤랑 바르트, 조광희 역, 『카메라 루시다』(서울: 열화당, 1994), p.22.

[2]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 김홍기 역, 『반딧불의 잔존』(서울: 도서출판 길, 2012).

[3] 발터 벤야민, 최성만 역,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사진의 작은 역사』(서울: 도서출판 길, 2007), pp.154-181.

[4] 구나연, 「사진은 “시적으로 거주한다”」, 『표류의 미술』(과천: 진인진, 2018), p.48.

[5]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이 『사진의 역사(La photographie scientifique et pseudo-scientifique, Histoire de la photographie)』에서 인용(전명은의 포트폴리오(2017)에서 재인용).

[6] 이현, “김경태: 포커스 스태킹, 표면으로 낙하하기”, 「아트인컬처」, (서울, 2019. 6.), p.142.

[7] 이민지, ‘필드:트립, 세션들’(2018)에서 인용.

[8] 위의 글에서 인용.

[9] 이민지의 작업노트, ‘필드 트립’(2018)에서 인용.

[10] 제프리 배첸, 김인 역, 『사진의 고고학-빛을 향한 열망과 근대의 탄생』(서울: 이매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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