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closing GV QnA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2015. 12. 12 closing GV QnA

 

 

이성휘 (큐레이터)
Q. 그간 하이트컬렉션의 전시는 크게 보았을 때, (지극히 주관적 관점일 수 있지만) ‘회화’를 축으로 기획이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한 큐레이터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전시공간의 정체성이나 연구분야를 설정하고 나아가는 방향이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A. 하이트컬렉션은 2010년 가을에 개관했고, 권진규와 서도호 작품으로 개관전이 열렸다.
‘하이트컬렉션’이라는 명칭으로 짐작할 수도 있는데, 개관 당시 하이트컬렉션의 전시 방향을 하이트진로 본사 및 문화재단의 소장품을 소개하는 것으로 설정했던 것 같다. 그러나 소장품만으로 테마가 있는 전시를 꾸준히 기획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곧 일반적인 현대미술 전시로 방향을 재설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전시공간이 본사 사옥 내에 있고 로비와 완벽하게 분리 되지 않아 소리 간섭 등이 생길 수 있는 공간이다 보니, 회화 등 평면 위주의 작업을 보여주는 전시가 열렸다. 자연스레 회화 전시가 많은 것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현재는 오히려 이 점이 특징이 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회화전을 꾸준히 개최할 계획이다.

 

 

Q. 나는 전시를 보기 전에 습관적으로 월텍스트나 기획의도를 먼저 읽는 편인데, 전시가 하나의 이야기로 먼저 다가오고 이것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습관을 들여왔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기획의도를 읽었을 때 동의하는 부분이 많았으나, 막상 전시를 볼 때는 정말 그럴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물론 개별의 작품들이 있어야 할 공간에 잘 배치되어 관람하기 편안했지만 동시에 현학적인 현대미술의 개념들이 빠지게 되었을 때 새롭게 드러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감각적인 인상들이 구체적으로 교차되는 포인트가 있거나 공간을 규정, 설명할 수 있는 트랩이 있었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A. 전시에 대한 배경지식과 감상의 선후 문제라고 설명하는 쪽이 부합할 것 같은데, 전시와 미술에 있어 현학적인 텍스트가 필요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개별적인 작품에 대한 감상이 우선 되었으면 했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전시와 할 수 없는 전시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아직까지 개념이나 이슈를 강조하고 특정한 주제에 의해서 작품을 강력하게 끌어 모으는 전시는 잘 못하는 편이다. 내가 이론으로 무장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작품과 작가가 특정한 슬로건에 동원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특정 주제에 의해 모아진 전시더라도 작가와 작품이 개별적으로 읽힐 여지가 있어서 어느 정도 자율성이 보장되는 전시가 좋다. 그러나 늘 내게 자문하는데, 내가 이론과 이념에 약하기 때문에 강력한 슬로건을 좋아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이번 전시를 꾸리는 동안에도 전시를 그럴싸하게 보이게 하는 이론, 배경지식 등에 대해서 계속 고민했고, 이것들이 전시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게 된 것 같다.

 

 

 

박연주(디자이너)

 

Q. 그냥 소소하게 궁금한건데, 왜 해적이 아니고 헤적프레스인가? 그리고 예전엔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로서 활동하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도록 디자인 등을 하면 글체는 꼭 바탕체를 고집하는 것 같다. 이유가 있나?
A. ‘헤적프레스’는 정희승작가와 함께 하는 출판사다. 대단한 뜻은 없으며 이전에 다른 작가/디자이너와 콜렉티브식으로 작업했을 때 이름을 ‘배반페밀리’가 아닌 ‘베반페밀리’라고 썼었다. 이때의 베반은 디자인의 배반 같은 느낌으로, 그렇기 때문에 베반이었다. 이후에 출판 등록을 하려고 이름을 생각 하다가 ‘해적’ 같은 느낌이 떠올랐는데 아무도 모르긴 하지만, 전에 내가 활동했던 이름과 이어 ‘헤적’으로 지었다. 나는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라기 보다는 그래픽디자이너이고, 항상 바탕체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 전시의 문학적인 느낌을 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선택했다.

 

 

Q. 책 겉에 싼 박형지 작가 회화의 띠지에 애착이 많으셨던 것 같다. 그게 들어가면서 더욱 문학적으로 느껴졌다.
A. 책을 만들 때는 늘 가상의 시뮬레이션을 한다. 형태, 두께, 종이의 질감 같은 것들. 그때 떠올렸던 것이 보통 일반의 도록 보다는 작은 소설판형에 친밀한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여러 사람이 하는 전시라 작품의 결도 다르고 작가의 글도 다르게 느껴지는데 그것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엮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 와중에 지금 띠지에 들어간 박형지 작가의 작품은 꼭 넣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본문에는 분량때문에 넣지 못했다. 고민하다 마지막에 단행본 문학지의 느낌을 주기 위해 띠지로 사용했다. 큐레이터님이 전시의 제목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니 의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큐레이터) 개인적으로 디자이너에게 감사하다. 전시기획을 많이 안 해봤지만 도록은 매 전시마다 만들었는데 디자이너가 작가의 작업을 이해했는지, 텍스트를 읽고 얹었는지 보이기 마련인데 그런 부분을 이해하고 작업하셨기 때문에 며칠 만에 일사천리로 책이 나오게 되었다.
(디자이너) 도록에 들어간 사진이 설치 컷이기 때문에 작품 설치를 끝내고 오프닝까지 일주일에 모든 것을 완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디자인 시안을 보낼 틈도 없어 애가 타셨을 텐데, 그냥 가만히 기다리셨다. 그러니까 왜 이렇게 작업은 또 잘되는 건지. (정희승) 도록에 들어갈 글을 받았을 때 글의 성격이 모두 달라 한 책에서 어떻게 이질적이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결과물을 보니 오히려 풍성해진 것 같다.

 

 

 

로와정

 

Q. 15분 가량 반복되는 영상 에서 테이프가 떨어지면 영상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몇 번 새로운 테이프로 새롭게 시작하는 것 같다. 위에서 아래로 투사되는 설치도 흥미로운데, 관람자로 하여금 영상을 하나의 공간처럼 느끼게 하고 또 그 영상과 함께 발을 맞추는 행동을 유도하게 되기도 한다. 발이니까 위에서 아래로 투사한다 이외에 다른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A. 발이기 때문에 아래로 투사한 것은 맞다. 인터렉티브라는 것이 관람객의 능동적인 참여뿐만 아니라 작품에 지나가게 되는 관람자의 그림자처럼 이미 전시장의 모든 작품에 들어가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 특히 영상작업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었다. 결론지어지지 않는 반복적인 상황이 어떻게 결론이 되는지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영상은 계속 반복된다. 은 첫 번째 레지던스에서 실제로 뭔가를 밟은 장소에서 즉흥적인 발견으로 영상을 찍었다. 전시할 때 마다 사이즈는 각기 다르게 투사했지만 대부분 실제 발 사이즈보다 큰 쪽으로 선택하고 있다.

 

 

Q. (큐레이터) 이번 전시의 영상이 각각 다르게 읽혔다는 이에게 관통하는 키워드로 two를 이야기했는데, 혹시 덧붙여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 한다.
A. two도 맞지만 그보다는 double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두 개가 같아 보이지만 다르고 달라 보이지만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Q. 스페이스 드로잉이라 이름 붙은 마스킹 테잎 작업 중, 유리난간에 선을 그어 마치 공중에 가상의 유리가 있는 것 같은 효과를 보여주는 과 천장에서 오는 조명으로 기둥에 지는 그림자의 공간을 만든 의 경우 로와정이 여기서 어떤 흥미를 느끼고 즉흥적으로 작업을 풀어낸 센스가 다가왔다. 그런데 가장 끝에 있는 는 지하에 있는 동명의 서도호 작업에 대한 것을 알기 전에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기가 힘들었다. 어떻게 보면 어떤 전시가 와도 끝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과’ 같은 작업을 작가들은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 작업에 대한 코멘트, 혹은 리액션 같은 작업 같아 신선했는데 어떤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인지 궁금하다.
A. 로와정은 하이트컬렉션에서 어쩌다 보니 세 번째 전시를 하는데 매번 편하지만은 않았다. 설치를 하는 어떤 작가든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구석으로 훔쳐보는 듯한 위치에서 캡이 열리는 구조물을 이용해 또 다른 원인과 결과를 만들어 보았다.

 

 

 

박형지

 

Q. 전시장 안쪽의 방에서 영상을 멍하니 보는데 기분이 참 이상했다. 작품을 폐기하는 과정이 담긴 영상인데 되려 죽음에 관한 작업물로 재탄생 되는 과정처럼 보였다. 본래 그려진 그림도 예뻤지만 비에 씻기고 벌레 먹으며 탈색되는 과정도 예뻤다고 생각한다. 앞에 실제 봉숭아가 피어나도 그림이 더 멋져 보였다. 탈색된 그림은 가지고 있나? 아니면 정말 그대로 소멸하게끔 그 자리에 아직 존재하나?
A. 학교를 졸업 하고 스튜디오를 이동할 때 마다 작업을 모두 가지고 있을 수 없어 전시를 하지 못하거나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들을 폐기하게 되는데, 다른 사람이 재활용할 수 없도록 캔버스를 잘게 찢거나 원본을 덮는 페인트칠을 했다. 창작이라는 정신적인 노동에 비해 처리하는 방식이 너무 순간적이고 즉물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물리적인 힘을 들이는 것이 아닌 자연적인 힘으로 그림이 천천히 사라지는 과정을 생각하게 되었다. 실제로 그림을 폐기하는 것을 목적했기 보다는 그림을 폐기하는 것에 관한 작업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림들을 보관하고 있다.

 

 

Q. 평소 작업을 할 때와 폐기를 위한 작업을 할 때의 차이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작품이 탈색될 때 까지의 실제 물리적인 시간이 얼마인지, 그리고 롱테이크의 영상에서 왜 밤의 등장이 없는지도 궁금하다.
A. ‘어떤’그림이 중요한 것이 아닌 ‘지워져야 할 그림’이 중요했기 때문에 그림 자체에 감정적인 애착은 크지 않았다. 빨리 이 그림이 어떤 식으로 지워지는지 알고 싶은 기대감이 더 컸다. 그림의 지워지는데는 45일 정도의 기간이 걸렸다. 밤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던 것은 촬영 공간이 같은 레지던시의 작가 가족의 집이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밤에 찾아가 촬영하기에 알맞지 않았다. 그리고 그림이 점점 없어지는 과정이 시각적으로 보이는 상황을 상상하다 보니 그림을 보기 어려운 밤시간은 자연스럽게 촬영에서 제외되었다.

 

 

Q. 작가님이 생각하시기에 이 작업을 영상과 페인팅 중 어느 쪽으로 분류할지 궁금하다.
A. 영상으로 기록된 회화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영상으로 낼 수 있는 기교를 배제했고 그림과 같이 고정된 틀 안에서 서서히 시간이 흘러가는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Q. 그림의 완성이라고 생각하는 지점이 궁금하다.
A. 회화언어가 가질수 있는 자율성과 융통성에 대하여 생각하며 작업을 진행한다. 무엇을 그리겠다는 대략의 방향이 있지만 그것이 구체적이고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회화적 선택에 대한 가능성을 넓게 열어두고 작업을 시작하는 편이다. 물감의 색이나 질감, 붓질, 형상 등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만들었다 없앴다하며 놀이에 가깝게 작업을 진행하다가 그 안에서 어떠한 구조같은게 생기면 작업을 완성해 나간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림이 더 손댈 곳이 없는 순간이 오면 완성이 되는데, 이것은 작가마다 다른 각자의 고유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This entry was published on February 3, 2016 at 4:55 am and is filed under Events. Bookmark the permalink. Follow any comments here with the RSS feed for thi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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